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48호

별일 아니라는 듯 누군가 말했다. "세 시간 정도 걸릴 거야."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연신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부족한 잠을 채우려는 필자(筆者)는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들으며 “정말 그럴까?” 속으로 되묻고 무거운 눈꺼풀을 덮었다. 이른 새벽에 우리는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처럼 일산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입춘(立春)을 열흘 앞둔 서늘한 공기 사이로 주인 없는 시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동진 여행은 筆者와 무관하게 이미 계획되었지만,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은 사주팔자(四柱八字)에 화기(火氣)가 많아 나름 물기(水氣)를 보완하고 보충한답시고 산山과 강江보다는 바다海를 더 찾는 취향(趣向)의 작용이다.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설렘이라는 감각도 찾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니, 하찮은 자기 연민과 다른 자존감을 낚는 어부(漁夫)가 된다. 선잠에서 깨어나니 정동진의 태양(太陽)은 이미 중천(中天)에 떠 있고 아스라이 먼 곳의 수평선으로부터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바다 세상이 펼쳐졌다. 무심한 세상을 향해 유별나게 의로운 척 분노하며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였다. ​바쁜 일상의 돌무덤에 갇혔던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듯 일어서기를 반복(反復)하며 격하게 춤을 추는 파도(波濤)의 행위예술에 감동한 우리는 동시다발(同時多發)의 기립(起立)과 박수갈채는 물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환호(歡呼)했다. ​말이 없는 파도의 신(神)들린 퍼포먼스는 무료(無料) 아니던가, 고장 난 벽시계처럼 멈추어 있거나 이유 없이 우울한 날이면 푸른 바다의 정동진으로 가볼 일이다.

​세계 최대의 공원 모래시계 앞에서 미리 도착해 있던 일행들과 반갑게 악수를 교환하고 두 번째 약속 장소였던 모래시계 공원의 빨간 기차를 향해 걸었다. 사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첫 눈에 들어오는 정동진역 앞 바닷가의 기차의 정체가 궁금했다. 몇 분 후에 알았지만 그곳은 시간을 주제로 한 독특한 전시공간이었다. '정동진시간박물관'은 시간의 탄생부터 아인슈타인의 시간, 예술로 승화시킨 중세의 시간,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현재의 시간을 시각화시킨 시계들의 환상적인 디자인과 상상을 초월하는 정밀한 시간의 조각은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닫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도 경이로웠다. 전시된 시계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예전 사람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힘들게 수집한 손길을 생각하면서부터는 왈칵 눈물겨워했으며 박물관 주인에게 두 손으로 엄지척을 해야 했다. 축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직도 내놓을 것이 없는 부족한 삶을 자책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역설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시간 박물관 주인의 전망 좋은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바다를 조망(照望)하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로 빠져드는 끌림이 가동되었다. 바다는 말이 없었지만 筆者의 기흥(起興)을 눈치 챘는지 굵직한 물결로 화답했다. 그곳에 존재함이 황홀했다. 세네카는 말했다. “우리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의 사용법을 안다면, 삶은 길어질 것이다.” 아무리 좋은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진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시간도 있다. 그런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어트랙션의 시간이 그렇다.

​그날 밤은 둥근 보름달이어서 썬크루즈의 야경(夜景)은 그 어느 날보다 특별했으며 달빛이 사방 천지에 가득했고 우리 일행의 이야기는 바다를 잠재웠지만 길게 이어지는 파도의 잠꼬대를 듣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횡설수설(橫說竪說)했던 술 취한 이야기들이 구름처럼 흘러갔다. 그러나 홀로 명상하기에 너무나 좋은 아침이었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호텔 룸의 욕조에서의 반신욕(半身浴)이라니 멋진 시간이다! 호사(好事)를 넘어 흔하지 않은 호사(豪奢)다. 고난의 시간을 견뎌낸 삶의 흔적이 사라진 시간만큼의 힐링은 덤이다. ​시간은 인생의 상수(常數)다. 경험하는 모든 순간을 형성하고, 과거의 추억을 간직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때로는 시간이 우리에게 압박을 주거나 제약을 가하지만, 또한 우리에게 기회와 변화의 문을 열어준다. 봄春처럼...

​똑같이 맞이하는 24시간이지만 누구는 살려서 사용하고 누구는 죽이며 사용한다. 시간을 살리고 죽이는 게 무엇일까? “1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단 60초인데, 신문 한 꼭지를 보기에도 모자란 시간 노래 한 곡을 다 듣지도 못하고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수도 없는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 ~ 안아주기에는 정말 충분한 시간입니다 매일 1분 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 안아주면 어떨까요. 앞으로 내가 얼마만큼 건강한 몸으로 얼마만큼이나 활동을 할 수 있을지를 손꼽아 보며 회의적인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뭉클한 마음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부터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루에 1분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꼬옥 안아주면 어떨까요.” ​절묘하고 찔림이 있기에 아프다.

'하루에 1분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라'는 최영순 만화가는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 창작과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그가 묻는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의 삶에는 봄이 왔나요?“ "세월이 약이라고 말하며 시간이 말해 준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올시다. 도도한 봄의 시간은 흐르는(流) 것이 아니라 붙잡는(攫) 것이다. 희망의 봄(春)이 내게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문(門)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만날 수 있다. 門을 닫고(閉) 마냥 기다린다면 꽃피는 봄의 짧은 시간은 부지런한 여름에게 빼앗기고 만다. 대지의 門이 열리고 만물이 생동하는 지금은, 오는 봄을 붙잡아야 할 골든타임이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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