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이 가을, 희망 씨앗을 준비해야 하는 결실(結實)의 계절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하루 쓰고 버려야 하는 마스크뿐이다. 뭔가 허전하고 가슴 먹먹 답답할 때면 벗어나고 싶은 욕구(欲求)가 스물스물 솟아오른다. 그 欲求(desire)는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부 정치인들이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임기응변(臨機應變) 언어로 순간 이동의 외줄타기 하며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붙잡는 '성찰(省察)의 기회'다. '省察의 기회'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힐링을 위한 여행 자신과 말하는 명상(冥想), 몰입(沒入)의 독서(讀書) 등 다양하지만 필자(筆者)의 경우 수행(修行)이라고 주장하는 동양의 고전(古典) 읽기다. 古典을 즐겨 읽으면서도 고전(苦戰)하는 것은 대략 8만7천 字의 漢字 중 일천3백字도 제대로 모르고, 잘 쓰이지 않는 약자(略字), 또는 속자(俗字) 때문이다. 지난 주 토요편지에 ‘다른 사람의 글을 베낀다’는 초서(抄書)에 대해 두서없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독한 코로나도 잊을 만큼 통째로 抄書할 만한 마음에 콕 박히는 글을 만났다. 그는 모르겠지만 마음 깊이 흠모(欽慕)하기에 그의 저서(著書)를 거의 모두 필독(必讀)하는 고전 문학의 대가(大家), 한양대 정민 교수의 ‘선모신파(鮮?晨?)‘라는 멋진 칼럼이다. 짧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위드 코로나의 암울한 시대의 걱정과 염려를 잊을 수 있고 정신이 담박(淡泊)해진다. 古典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정 교수의 글은 잔잔한 울림을 주고 省察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언제나 漢文때문에 苦戰한다. 문맥(文脈)의 흐름이나 漢字의 훈음(訓音)을 모르면 검색(檢索)하기도 쉽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苦戰하면 苦戰할수록 오묘하고 참한 글맛을 느낀다. 먼 데서 불어 오는 가을 바람처럼 밝고 맑고 상큼한 德談을 한가위 선물로 나눠 준 정교수에게 감사를 전한다. 모르는 漢字를 檢索하며 힘겹게 필사(筆寫)를 마치자 심란했던 마음이 맑아 졌고 잔잔한 울림으로 뭉클했다. 옛 선비들의 대화 홀로 감당할 수 없어 토요편지 독자(?)들에게 그 감동과 여운을 전하고 싶어 읽기 쉽게 편집(編輯)하였다.

글씨도 글씨지만 적힌 내용에서 쓴 사람의 학문과 품격을 만날 때 더 반갑다. 어떤 작품은 필획에 앞서 글귀로 먼저 진안(眞?)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추사의 ‘선모신파(鮮?晨?)‘ 현판을 보았을 때 그랬다. 찾아보니 이 구절은 진(晉)나라 속석(束晳)의 '보망시(補亡詩)‘ 연작 중 백화(白華) 시의 제3연에 들어 있다.

“백화현족, 재구지곡(白華玄足, 在丘之曲).

백화의 검은 뿌리, 언덕 굽이 곁에 있네.

?당당처자, 무영무욕(堂堂處子, 無營無欲).

당당한 아가씨는 꾀함 없고 욕심 없어.

?선모신파, 막지점욕(鮮?晨?, 莫之點辱).

새벽 꽃처럼 고와, 더럽힘 입지 않네."

?‘신파(晨?)’는 이른 새벽에 이슬 맞고 피어난 꽃이다. ‘모(?)’는 본받다, 가지런하다는 뜻이다. 글자로 풀면 곱기가 새벽 꽃과 똑같다는 의미다. 이슬에 젖어 갓 피어난 언덕 모퉁이의 꽃을 보고, 욕심도 없고 속셈도 모르는 천진한 처녀의 순결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에게는 조금의 두려움도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앞쪽 제2연은 멋진 선비에 관한 노래다.

?"백화강부, 재능지추(白華絳趺, 在陵之?).

백화 붉은 꽃바침은, 언덕의 모퉁이에.

?정정사자, 녈이불유(??士子, 涅而不?).

어여쁜 선비님은, 흙탕에도 물들잖네.

?갈성진경, 미미망구(竭誠盡敬, ??忘?).

정성과 공경 다해, 힘써 노고(勞苦) 잊는구나."

?붉은 꽃받침을 단 흰 꽃이 언덕 모퉁이에 피었다. 멋진 선비가 진흙탕 속에서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진심의 사람이어서 부지런히 힘을 쏟아 공부하고 일하면서도 힘든 줄을 모른다.

한종규(韓宗揆)는 권두경(權斗經 . 1654~1725)을 애도(哀悼)한 만사(輓詞)에서 이렇게 썼다.

?“유곡신파결, 사옹숙기종(酉谷晨?潔, 斯翁淑氣鐘).

유곡의 새벽 꽃 깨끗도 하니, 이 노인의 맑은 기운 모인 것일세.

?금기영사옥, 문채엽여용(襟期瑩似玉, 文采燁如龍).

회포는 환하기가 옥과 같았고, 문채는 빛남이 용과 같았네.“

?이렇듯 새벽 꽃 같다는 말은 고결함을 나타내는 최고 찬사다. 긴 밤을 지새우고 이슬에 함초롬 젖어 꽃망울이 부픈다. 티끌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질 것만 같다. 발 아래 세상이 아무리 진창이어도 그를 더럽히지는 못할 것이다. 추사는 이 글씨를 써주면서 글씨를 받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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