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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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시간’이다. 39년 만의 7월 지각(遲刻) 장마가 제주도(濟州道)부터 시작된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지난 달 24일 濟州에서 만났던 어떤 작은 모임의 ‘가칭(假稱)’이 생각났다. 매월 한 번씩 濟州道 방문을 추진하겠다는 '제주 나들이'라는 모임은 무역업자, 변호사, 제조업자 등 50대에 문턱을 넘어가는 서로 다른 업(業)의 4명이 복잡한 세상을 조망(眺望)하면서 여유 있게 살자는 취지였고 단순한 삶이 모토다. 아무려나 세상 물정도 모르고 분주(奔走)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스스로 압류(押留)시켰던 인간의 자유를 찾겠다는 것이고 결국 진아(眞我)를 찾는 일이다. 우연히 만난 이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제주 나들이'의 화두(話頭)를 자근자근한 ‘안주감‘으로 삼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바다가 먼저 취(醉)하고, 바다가 설교(說敎)를 하면 목사(牧師)가 듣는다"는 어느 시인의 시어(詩語)를 취중진담으로 중언부언하면서 화기애애(和氣靄靄)한 술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인생 뭐 있어?’ 섬나라 탐라국(耽羅國)에서는 누구나 시인(詩人)이 되고 이야기꾼이 된다. 서로 다른 이유로 濟州를 찾은 사연은 달라도 세상사는 이야기에 취(醉)했고 ‘소폭‘의 순배(巡杯)가 거듭될수록 의미와 재미는 가벼워졌지만 흥미진진했다.

?속절없이 불콰해진 나는 감성이 충만한 상태였고 그야말로 돌출발언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하수(下手)는 복잡하고 고수(高手)는 단순한 법이니 ‘제주 나들이’를 '제나(濟拏)' 두 자(字)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난 후, 현대는 네이밍(Naming) 시대라면서 그럴듯하게 ‘썰’을 풀기 시작했다. 취중(醉中)인지라 거침이 없었다. 어두운 밤바다를 가로막은 방파제(防波堤) 포차에서 횡설수설(橫說竪說)하였지만 몇 마디는 기억할 수 있다. 나보다 먼저 취한 파도(波濤)가 잠든 탓이다. ‘濟’는 ‘건널 제‘로 ‘건너다‘, 건지다’는 뜻이지만 빈곤이나 어려움에서 구제(救濟)하다는 의미도 있다. 가난함을 극복한다는 말이다. A에서 B, 여기서 저기 어딘가로 건너간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는 것이지만 남모를 고통이 따른다는 뜻이다. ‘拏‘는 ’붙잡을 라(나)‘로 ‘비비다’, ‘뒤섞다’는 뜻이지만 ‘끌어당긴다’는 의미가 있다.나를 끌어당기는 좌표(座標)라 해도 무방하다.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전생(前生)에 보살이었을 때의 이름이 소달라(蘇達拏)였다. '拏'는 쉽게 대할 漢字가 아니다. 장애물을 건너가야만 뭔가의 붙잡힘을 당할 수 있다는 ‘濟拏’의 Metaphor는 애써 건너가려는 수고(愁苦)로부터 좌표(座標)에 향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어떤 배움은 떠나야만 가능하다. ‘濟拏’의 인문적(人文的) 시선은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류시화 시집 '마음 챙김의 시'에 나오는 <최고의 노래>라는 '웨델 베리'의 멋진 詩가 있다. "모든 노래 중에서 최고의 노래는고요 속에 들리는 새소리, 하지만 먼저 그 고요를 들어야 한다." 말인즉슨 최고의 노래는 침묵의 고요를 체득한 다음이라야 허(許)한다. ‘濟’에서 ‘拏’로 이어갔듯이 허(虛)에서 許로 건너가는 것 아닌가! 술 취해 흔들리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잘 알려진 사자성어(四字成語)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사전적 의미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 한다’는 뜻이다. 同樂 이후의 同苦는 괴로운 일이다. 同苦 이후의 同樂은 기쁜 일이다. 세상의 이치는 同苦가 먼저다.

?1950미터의 한라산(漢拏山)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만 도대체 말이 없다. 오래된 침묵(沈?)의 위엄(威嚴)은 해저(海底)에 숨겨 두었다. 지독하게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초지일관(初志一貫)하지만 368개의 ‘오름’을 거느리고 濟州島를 지배하면서도 푸른 바다의 눈치를 살피며 바다 건너오는 그 누구라도 붙잡고 깊고 깊은 품안으로 들인다. 제주 공항에 내릴 때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漢拏山의 아우라가 그렇다. 매력적인 沈?의 언어다. 그 누구라도 신성(神性)의 漢拏山에 이끌리면 濟州道는 힐링의 섬(島)으로 보답한다. 그것은 운명적일 수도 있다. 우연한 술자리에서 직조(織造)된 이야기의 ‘제주 나들이‘뿐만 아니라 서핑(Surfing)하는 서퍼들처럼 거센 파도를 타며 그 바다를 건너감으로써 서로 다른 이끌림의 좌표에 닿을 수 있다. 인생의 시간은 바다 건너에 있다. 정확하게 5일 후, ‘제주 나들이‘의 좌장(?)으로부터 다음 기회에 함께하고 싶다는 핑크빛 카톡을 보내 왔다. 그들은 밤바다의 어둠을 뚫고 운명적인 시간에 붙잡힌 것이며 어딘가로 떠남으로써 들리는 ‘최고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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