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교수 인문학 칼럼> 제848호: 회초리

박영희 승인 2022.04.16 20:14 의견 0

아주 작은 독서실이자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는 하우스(Home), 다용도(多用度)의 허름한 원룸 오피스텔에서 입주(入住)한 지 7년 만에 이사(移徙)를 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창고(倉庫)의 이주(移住)다. 은퇴(隱退) 이후, 제주도에 내려갈 때까지는 참고(耐) 견디려고 했지만 시설의 노후화(老朽化)로 마음까지 늙어 갔고, 느슨한 매너리즘에 갇혔으며 협의(狹義)의 필요조건은 버리지 못하고 쌓아 둔 책(冊) 때문이었지만, 광의(廣義)의 충분조건은 창고(創庫)의 혁신이며, 무사안일(無事安逸)의 분위기 쇄신을 위한 공간의 변화다.

​移住나 移徙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각종 전기스위치의 쓰임새가 눈과 손에 익을 때까지 헷갈리지 않도록 표식(標式)을 해서 붙인다. 서로 다른 용도(用途)의 조명(照明)때문이다. 수차례의 移徙를 통해 길들여진 생활의 지혜다. 그런 다음에는 移徙한 목적이나 이유를 숙고(熟考)하면서 생각나는 글씨를 묵상(默想)후 또렷이 새겨 출입문(出入門) 위에 작은 편액(扁額), 흔히 현판(懸板)으로 통칭되는 생뚱 맞는 작업을 한다. 주술적(呪術的) 행동으로 좁쌀 같은 범부(凡夫)로서 가당치도 않으며 광기(狂氣)의 미친 짓이라는 핀잔도 들어야 했지만 낯선 곳에서의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려는 각오의 오래된 습(習)이다. 먼저 출입문 바깥쪽 扁額은 ‘여유당(與猶堂)’으로 정했다. ‘與와 猶’ 두 글자의 해석이 쉽지는 않지만 노자의 도덕경 15장에 나온다. “여혜약동섭천(與兮若冬涉川) 머뭇거림이여! 겨울에 시내를 건너듯 하고, 유혜약외사린(猶兮若外四隣) 주춤거림이여! 사방(이웃)을 두려워하듯 한다.“ ​또한 박무영이 옮긴 ‘뜬세상 아름다움’에서는‘망설이기를(與) 겨울에 시내 건너듯, 겁내기를 (猶)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필자(筆者)의 생각으로는 겨울에 살얼음을 걷듯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매사에 조심하고자 하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출입문 안쪽에는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써 붙였다. “거문고 줄을 풀고 다시 고쳐 매다“ 老朽化(꼰대처럼)되어 가는 느슨해진 분위기를 고쳐 신발 끈을 단단하게 묶고 늘 긴장하겠다는 각오였다. 혼자만의 공간에는 ‘사의재(四宜齋)’를 써 붙였다. 四宜齋는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강진(康津)에 귀양 가 살 때 4년 간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마땅하다[宜]라는 것은 의롭다[義]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는 말이다. 새로 入住한 낯선 곳에서 여기저기에 懸板을 하고 글씨를 써 붙인다는 것은 筆者가 생각해도 다소 엉뚱한 푼수 짓으로 힐난(詰難)을 들을 수밖에 없는 呪術과 같은 의식(儀式)이지만 세월까지는 탓하지 않더라도 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스스로 성찰(省察)하고 반성하며 반추(反芻)하기를 기대하는 것 언제나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열심으로 하지만 나중에는 태만해지는 것이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시근종태 인지상정(始勤終怠 人之常情)'이라 하지 않았던가. 음악에 리듬이 있듯이 삶에도 고저(高低)가 있기에 늘 긴장하기도 힘들다. 삶의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각박하여 피폐(疲弊)하거나 무미건조(無味乾燥)한 날들이 훨씬 더 많다. 언어의 유희(遊戱)처럼 진부(陳腐)할 수도 있겠지만 '고통 없는 삶을 꿈꾸는가? 쾌락을 포기하라' 게으름과 느슨함 우울하고 답답한 일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扁額이나 懸板의 글들이 허접한 筆者 마음을 자극하는 회초리가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까지도 회초리 없이는 불구(不苟), 즉 구차하지 않고 자유롭게 잘 살아갈 만큼 宜와 義의 제어와 절제 그 당당함이 부족한 筆者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는 언제나 지적인 가치가 있기에 회초리에 민감하고 긴장한다. 산사(山寺)의 정적(靜寂)을 깨트리는 죽비(竹篦)소리와 같은 엄숙(嚴肅)한 '회초리'는 더 나은 내 인생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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