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교수 인문학 칼럼> 제836호: 잠린소미(潛鱗燒尾)

꼬리를 태워야 용이 될 수 있다

박영희 승인 2022.01.22 16:34 | 최종 수정 2022.01.30 08:06 의견 0

지난 해 연말 즈음에 평소 존중하는 아우로부터 맥이 빠진 전화가 왔다. 올해도 탈락(脫落)되어 갈망하던 승진(昇進)의 꿈을 포기해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전화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흔한 농담처럼 '포기'는 배추 셀 때만 활용되는 언어라고 말할 게재가 아닐 만큼 심각했다. 평소 공직자로서의 품행이 엄정하고 단정했으며 그의 행실은 누가 봐도 반듯하고 우수하였기에 그토록 소망하던 승진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그런 합리적 기대에 공감했던 필자(筆者)도 크게 상심(傷心)했다. 하늘도 무심하게 운(運)이 없었던 것이다. 昇進만이 공직(公職)의 목표나 가치가 아니라던가 運이 없었다는 말로는 피차(彼此)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었다.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계급 정년을 포함하더라도 1년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저서 <점검> 765~767쪽의 글을 발췌하여 보내며 마지막까지 열정을 다해 '잠린소미(潛鱗燒尾)', 즉 꼬리를 태워야 용이 될 수 있다고 응원했다. ​燒尾, '꼬리를 태우며 끝까지 버틸 수 있어야 기적과 만날 수 있다'는 그 말은 참아 두었다. 꼬리를 단 한 번도 제대로 태우지 못하고 청춘의 뜻을 이루지 못한 筆者 자신에게도 혹여 이런 저런 일로 실패하였거나 실망한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위로의 말로 전하고, 특히 어깨 늘어진 아우에게 우정의 술 잔을 따르며 직접 전하기 위하여.....

세종 때 김반(金泮)이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어룡(魚龍)을 그린 족자를 내밀며 제시(題詩)를 청하는 이가 있었다. 그가 붓을 들었다. 수화경초폭(誰畵輕綃幅)가벼운 비단 화폭 그 위에다가 풍도운무몽(風濤雲霧濛).바람 물결 구름안개 누가 그렸나. 금린번벽해(錦鱗翻碧海)비단잉어 푸른 바다 번드치더니 신물상청공(神物上靑空)神物이 푸른 허공 올라가누나. 잠견형수이(潛見形雖異)숨고 드러난 형상은 비록 달라도 비등지칙동(飛騰志則同)날아 솟는 그 뜻은 한가지일세. 약위소단미(若爲燒斷尾)만약에 꼬리 태워 끊는다 하면 반부재천룡(攀附在天龍)하늘 위의 용이 되어 타고 오르리. 중국 사람이 감탄하고, 그를 소단미선생(燒斷尾先生)으로 불렀다. 시 속의 소단미(燒斷尾)는 고사가 있다. 황하 상류 용문협(龍門峽)은 가파른 절벽이 버티고 서있다. 거친 물결을 힘겹게 거슬러온 잉어가 이 절벽을 치고 올라가면 용으로 변화하지만 실패하면 이마에 상처만 입고 하류로 밀려 내려간다. 이른바 용문점액(龍門點額)의 성어가 그것이다. 잉어가 용문협을 힘차게 튀어올라 꼭대기에 다다르는 순간, 머리부터 눈부신 용으로의 변모가 시작된다. 마지막 순간에 하늘은 우레를 쳐서 아직 남은 물고기의 꼬리를 불태운다. 燒尾, 즉 꼬리를 태워 끊어버려야 마침내 잉어는 용이 되어 허공으로 번드쳐 올라갈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과거급제의 비유로 쓴다.

​고려 때 이규보도 잉어 그림 위에 쓴 화이어행(畵鯉魚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아공도화낭박천(我恐桃花浪拍天) 염려키는 도화 물결 하늘까지 닿을 적에 거입용문소미염흠비(去入龍門燒尾炎欠飛起) 용문에서 꼬리 태워 갑자기 날아감일세. 정조 때 이헌경(李獻慶1719~1791)의 시 기몽(記夢)은 또 이렇다. 신물영구지중양(神物寧久池中養) 신물이 어이 오래 못 속에서 길러지리 회작용문소미이(會作龍門燒尾鯉) 용문협서 꼬리 태운 잉어가 되리라. 같은 의미다. 잠린(潛鱗), 즉 물에 잠겨 살던 잉어가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 제게 달렸던 꼬리를 태워야 비로소 용이 되어 승천한다. 그리하여 여의주를 입에 물고 신묘한 변화를 일으켜 천지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 영험(靈驗)스러운 존재가 된다.

사실인즉슨 임진년(壬辰年.1952), 龍 띠의 해에 태어났지만 용문에서 아직 잉어로 살며 단 한 번도 꼬리를 태워 龍이 되어보지 못한 筆者는 <점검>이 출간되기 수년 전 <세신실어>에서 읽고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기에 감회가 남 다르다. 昇進의 運이 따르지 않는 상심(傷心)한 아우에게 서로에게 남아 있는 꼬리를 불태워 龍이 한 번 되어 보자는 동병상린(同病相隣)의 안간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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