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님이 사용하셨던, 벽에 고정된 손잡이)

어머님 손때 묻은 39년 묵은 살림이 대단했다. 2/3 이상 정리했다. 아까워도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어머님과 시누님은 용인 이사갈 집으로 먼저 떠나시고 이삿짐 센터의 일이 다 끝날 때까지 내가 끝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불편하신 아버님께서 의지하신 벽에 고정된 손잡이를 몇번이나 만지작 거렸다. 마지막 텅 빈 집을 확인하고, 키를 경비실에 맡기고 걸어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1982년 결혼하고 신혼 살림을 7동에 꾸렸는데 시부모님께서 아들 곁에 오시겠다고 해서 두 달 뒤 옆동 6동으로 이사오셨다. 우리는 3년 후에 조금 넓혀 이사를 나왔고 시부모님은 거기서 줄곧 사셨다. 6년 전에 아버님이 떠나시고 어머님은 어제 용인 실버 복지아파트로 이사가셨다. 그동안 시댁에 올 때마다 바라다 본 나의 옛 신혼집 7동 805호를 마지막으로 쳐다보며 잠시 회한에 젖었다.

파노라마처럼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7동에 살 때, 첫 아이를 임신 중독증으로 잃고 슬픔과 두려움에 오랜 시간을 움츠려 있던 나날들, 아기는 없는데 젖이 줄줄 흘렀고 젖을 말리기 위해 끈을 공꽁 묶었다. 큰 녀석이 태어나서 마냥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고, 어머님과 함께 장보러는 또 얼마나 다녔던가. 울고 웃고 조바심으로 잠 못 이룬 밤들도 얼마나 많았는지.....어머님 댁 부엌 창문에서 보이는 우리집 거실, 거실이 어두우면 걱정되시는 어머님이 인터폰을 하셔서 왜 거실 불을 안켜놓으냐고 하시면 나는 “네, 거실에 불 켜 놓을 게요.” 하고 얼른 불을 켰다. ㅎㅎ 그 때는 동끼리 인터폰을 할 수 있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관심, 구속, 순종, 사랑, 자유.....

용인에 먼저 가 계신 어머님께 마무리를 했다고 전화를 드리면서 “어머니, 마무리 다 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네요,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하면서 폰을 붙잡고 울었다. 어머니께서는 당황하신 목소리로 “얘는, 나도 안 우는데 네가 왜 우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가 집 마지막 마무리를 다 해줘서 정말 고맙다. 애썼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아파트 6동 7동을 바라보며 떠나오면서 펑펑 울었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흔적들에게 감사하며 마음 속으로 “굿 바이” 라고 인사를 했다.

(시댁 부엌 창문에서 바라보이는 우리 신혼집 거실 베란다)

(예쁘게 정돈된 이사한 어머니댁 거실)

오후에 용인에 들렀더니 벌써 거실이 예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워낙에 부지런하고 살림꾼이신 어머님이시다. 언제부턴가 나를 적극 신뢰하시고 내편이 되어주시는 어머님께 감사드린다. 풍광 좋고 아름답고 아담한 새 보금자리, 시니어들을 위한 실버 복지아파트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남은 여생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재단하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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