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서울의 문에 대해 알아보았다.

?숭례문: 국보인 숭례문은 조선 태조7년(1398년)에 세워진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1907년과 1908년 사이에는 왼쪽과 오른쪽에 있던 성곽을 철거하였다. 2008년 방화사건으로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작업을 하고 왼쪽과 오른쪽의 성곽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한양의 출입문으로 매일밤 인정(10시쯤)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날 아침 파루(새벽 4시쯤)에 문을 열었는데 문루에는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는 임금이 여기서 몸소 날이 개기를 비는 기청제나 비가 내리기를 비는 기우제를 지냈다.

?흥인지문: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은 1398년(태조 7년)에 당시 서울 도성의 동쪽문이다. 지금의 문은 1869년(고종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서울의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없다. 문루는 문을 지키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의 역할 도 했다. 흥인지문의 문루는 전체구조는 간단하지만 장식이 많은 19세기 건축물의 특징을 잘 반영한다. 흥인지문의 앞에는 적을 막기위한 반달모양의 옹성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 성문 가운데 유일하다.

?창의문(북소문): 서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창의문이 서울 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영조 17년(1741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것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에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소 세워지게 된 것이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창의문은 자하문이라 불리는데 안내 표지에는 엇갈리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1. 이 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이라고 불려왔다. 2.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의 승경지(경치가 좋은 곳)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하여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혜화문(동소문):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동북쪽 문이다. 창건당시에는 홍화문으로 불렀으나 1511년(중종 6년)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조 때에는 없던 문루를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었는데 1994년에 본래보다 북쪽으로 옮긴 자리에 문루와 홍예를 새로 지었다.

?광희문(남소문): 한양도성의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屍軀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 불렀다.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다. 조선초 도성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1719년 문루를 세워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그후 1975년 도성복원 공사의 일환으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였다.

?서울에 있는 문을 살펴본 결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건축물인데 그 동안 너무 무관심하고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세계로 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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