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오늘 저녁은 내가 준비할께요" 요즘 추석 밑이라 이것저것 택배가 많이 오니 그걸 받아 냉장고 속을 정리하는 재미가 붙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진 거 같다. 냉장고 속에서 먹고 싶은 채소를 다 꺼내 놓고 날더러 그걸 썰어 준비해 주면 된다 하고 저는 고기 굽는 기구를 꺼내 있는 폼을 다 잡는다. 헉! 하며 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6살(만 5살) 때 엄마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눈물 한 방울을 안 흘리고 그저 내가 어디 갈까 봐 내 손목을 잡고 놓지 않으면서 졸졸 따라 다니니 "에고, 너 완전 제대로 된 껌딱지 하나 붙었네" 하며 친구들이 가여워하던 일이 스친다. 고 어린 것이 이제는 가끔 설겆이도 하고 방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저렇게 식사 준비도 한다고 설치게 되었으니 난 얼마나 늙어버린 것일까? 저 꿍꿍이 속에는 용돈받기 같은 뭔가 계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반갑다가 기뻤다가 또 슬픔도 한 몫 보태지는 저녁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부터 불판에 하나하나 올려 놓고 있다. 워낙 입이 짧아서 항상 많이 먹었으면 하는 바램이 가득하지만 억지로 먹일 순 없어 맘 고생만 한다. 그게 마음에 쓰였는지 "내가 그래도 이것저것 조금씩이라도 잘 먹을께요" 라고 가끔 내게 말해 주기는 한다. 오늘은 좀 많이 먹을려나? 기대를 가져본다. 4학년 2학기가 되면서는 키고 컸고 몸무게도 아직 평균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몇 킬로 늘었다고 자랑 자랑이다. ?아주 맛있단다. 좋아하는 옥수수, 가래떡, 양파, 고구마, 팽이버섯, 배추김치, 파, 피망, 당근, 호박 등등 배추김치는 불판에다 올려 놓고 언제 열무김치를 꺼내 놓았다. 입이 호사하는 날이다. 암튼 오랫만에 그런대로 입맛을 다셔가며 먹이거 저거 챙겨 먹는 모습이 대견스럽게 보였다. 나도 덕분에 여러가지를 잘 챙겨 먹넜다. 오늘은 설겆이도 자기가 한다나?

다 먹고 설겆이가 끝나자 지갑이 등장했다. 짜안~~내 용돈이 얼마게? 열심히 세더니 9만 1000원이란다. 오늘부터 10만원을 만들려고 한다나, 할 일들을 해서 용돈을 벌꺼라나, 속으로 웃음도 나고 이제 용케 계산도 잘하게 되었구나 싶어 마음이 이상해졌다. 천원은 500원이 둘이면 된다는 것도 몰라 쩔쩔매더니.....하긴 이제 도형을 배우고 곱셈 나눗셈도 척척 하게 되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고 작은 껌딱지가 이렇게 커서 용돈을 모으는 재미도 알게 되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가끔 자기 통장을 꺼내 보면서 흐믓해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참 좋다. 이제 할머니 용돈도 주고 집안 일도 하나씩 하나씩 도와 주려고 마음쓰니 그만큼 난 늙었을게고 내 엄마는 요양소에서 코로나가 아직도 극성인데 무슨 면회냐며 추석도 조용히 집에만 있으라고 성화시다. 정해진 용돈 설겆이 500원과 상차리기 500원을 계산해 주면서 아이는 신나서 웃고 난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어쨌건 껌딱지가 어느새 용돈 챙길만큼 훌쩍 자란 이런 게 사는 맛이겠지.

기사 원문보기: https://cafe.naver.com/sbckorea/41682

#용돈#껌딱지#이런게사는맛#스테이크#설겆이#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저작권자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