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교수 인문학 칼럼> 제801호 : 자산어보(玆山魚譜)

박영희 승인 2021.05.22 21:36 | 최종 수정 2021.05.22 21:42 의견 0
이미지 출처:오마이뉴스

5월16일(일요일), 궂은 비 내리는 김포를 이륙(離陸)한지 55분만에 광주 공항에 착륙(着陸)했다. 코로나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불쌍한 중생(衆生)들의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씻어 주려는 듯 봄비(春雨)는 더 세차게 내렸고 비바람에 젖은 공항(空港)은 낯설고 어수선했다.약속 장소에서 렌트카를 인수(引受)한 후에는 영화 <자산어보(玆山魚譜)>의 감동, 그 흔적을 탐색하겠다는 순정한 기획(企劃)을 잊을 만큼 배고픔이 밀려 왔다. 새벽에 출발한 탓이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 허영만의 백반기행이 추천한 목포의 쫄복탕 맛집을 찾아갔다. 11시30분 경, 이른 점심(아점)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는 노포(老舖)의 허름한 식당에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허기(虛飢)를 채우고 압해도(押海島)를 향했다.흑산도(黑山島)는 목포에서 출발할 수도 있었으나 차를 갖고 입도(入島)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송공항 여객 터미널에서 배편을 확인하고 가까운 곳에 팬션을 잡았다. 꽤 비싼 비용을 치렀지만 새벽 출항하는 배 시간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배운 대로 못살면 생긴 대로 살아야지“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 청년 어부 창대의 이 말은 여행 중에도 와닿는 맞는 말이다. 다음 날 아침, 6시40분 출항한 뉴드림호는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술 취한 것처럼 몹시 흔들렸다. 간밤 뻘낙지에 술 마신 건 필자(筆者)였는데 아침 바다가 대신 취한 것이다. 10시 20분, 黑山島에 도착할 때까지 견뎌야 했던 메스꺼운 배멀미, 낙지처럼 꿈틀거렸다. 요즘 세상의 정치 멀미보다는 견딜만 했다. 마스크 때문에 승객들의 표정이 읽히지 않지만 筆者와 각기 다른 이유로 섬(島)으로 가는 것일 뿐 정약전처럼 귀양길로 가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대부분 잠을 청하거나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우고 드물게 고스톱을 즐기는 등 모두가 자유분망했다.흔들리는 배는 3시간 40분만에 갈매기가 먼저 축하 비행하는 항구(港口)에 닿았다. 첫 눈에 들어온 섬(島)의 풍경은 1004개 섬의 일부가 아니라 마치 강원도에 온 것처럼 검푸른 신록(新綠)의 산수(山水)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경험하지 못한 경이(驚異)로움의 만남이었다. 누구나 배움 한 가운데서 인생의 스승을 하나 쯤은 만난다. 누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그의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며 모든 관계(關係)의 재발견이다. 스승처럼 느껴진 흑산도 품에서 노니는 동안 가슴이 벅찼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詩) 그 섬이 아닌가 싶었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주옥(珠玉)같은 명대사를 남긴 영화 <玆山魚譜>는 흑산도로 유배(流配)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세길로 나아가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서로 스승이 되고 또 벗이 되는 가장 인간적인 만남이다. 정약전이 물었다. “공부를 왜 하느냐?” 창대가 대답했다. “사람 노릇 할라고요“ 만약 그 시대의 정약전이 CEO 토요편지를 쓰고 있는 筆者에게 “편지는 왜 쓰는거요?”라고 묻는다면 “밥값, 술값을 하려구요” 농담(弄談)임을 알아차리고 인문학적인 답을 재촉한다면 "사람답게 살려구요" 혼잣말을 하고 쑥쓰럽기는 해도 이 보다 더 좋은 답을 찾지 못했다. 흑백 영화 <玆山魚譜>는 黑山과 玆山의 경계(境界)에서 희미한 빛으로 희망을 찾아가는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우울한 현대인들을 각성시키고 미래로 마중한다. 색채보다 찬란한 흑백(黑白)으로 나이, 신분, 시대를 초월한 뜨거운 울림과 위로를 전하는 영화 <玆山魚譜>를 이미 보았다면 흑산도 여행을 강력 추천한다. 흑산도를 떠날 즈음에 정약전이 창대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지식과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화살 같은 세월은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는 세상인데 삶은 더 퇴보하는 느낌이니....“ 코로나 이후 세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건만 날마다 일기예보처럼 발표되는 확진자 숫자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방역(防役)의 감옥(監獄)으로부터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는 筆者에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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